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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현장스케치 기사) 시민을 일깨우는 시민들 - 광화문 촛불문화제에 다녀와서
- 김선영
- 조회 : 23404
- 등록일 : 2008-06-11
(현장스케치 기사)
시민을 일깨우는 시민들 - 광화문 촛불문화제에 다녀와서
* 김선영 / 김하늬 (108)
오덕상(27, 대학생)씨는 청계천 근처에 있는 한 대기업의 최종면접이 끝나자마자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주말마다 열리던 촛불문화제지만 덕상씨는 처음이라고 했다. “8월 졸업인데 취업 못하고 졸업할까봐 3월부터 정신없이 원서 넣고 면접보고 취업 스터디했어요. 광우병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쇠고기 협상을 하는 정부가 굴욕적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지금 9학기 째라 이번에 꼭 취업해야해서....” 촛불 문화제에 몇 번째 왔냐는 간단한 질문에 덕상씨는 구구 절절 사연을 늘여놓는다. 시청에 못나온다고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도 덧붙였다. “만사 제치고 거리로 나오는 건 진짜 시민의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삶을 책임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요. 이제 면접 결과만 기다리면 되니까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왔어요.”
오후 5시, 광화문 사거리 10차선 대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인도로 걷던 덕상씨도 조심스럽게 차도로 내려왔다. 길가에서 나눠주는 플래카드도 하나 받아 가방에 붙였다. “혼자 집회 나오는 거 처음이에요. 1학년 땐 선배들 따라 많이 나왔는데...” 덕상씨는 촛불문화제가 아직 어색한 것 같았다. 한 살도 안 돼 보이는 아이를 안고 나온 부부와 교복을 입고 얼굴에 가면을 쓴 대여섯 명의 여고생들이 지나갈 때 마다 고개를 돌려 신기한 듯 쳐다봤다. 한 손에는 핫도그를, 한 손에는 양초를 든 초등학생 세 명이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치면서 지나가자 “저 애들은 뭘 알고 하는 말일까요?” 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광화문 거리에는 야구모자와 빨간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수대’도, 가사에 ‘투쟁’과 ‘혁명’이 서너 번씩은 들어가는 민중가요소리도 없었다. 싸움을 걸고, 전경과 시위대가 힘으로 밀어내기 한 판을 하는 집회만 기억한다는 덕상씨는 새로운 집회 문화를 볼 때 마다 “우와”하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번 촛불문화제는 시민이 시민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게 참 멋져요. 1학년 땐 어머니께서 집회에 나가면 내 아들 아니라고 화내시곤 했는데 이번 촛불 문화제는 왜 안 나가냐고 먼저 물어보셨거든요.” 생각이 변한 사람은 덕상씨의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거리에 나와 정부를 상대로 주장을 하는 일이 새로워서일까? 처음 몇몇 언론은 ‘배후세력’을 찾아내고, 사람들을 동원한 ‘조직’을 색출하려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다양한 세대와 지역의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정부에 반대 의견을 전달하는 일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회는 더 이상 폭력적이거나 투쟁적인 것이 아니었다. 87년에는 경찰이 무서워 집 밖 데모 현장에 못나갔다던 여고생이 이제는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광화문에 섰다. 김경희(37, 주부)씨는 남편이 8시쯤 퇴근하면 함께 밤까지 있을 예정이라며 초를 들고 있는 8살 근호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디카로 찍은 건데 출력해서 근호 방에 붙여줄 거예요. ‘우리 근호는 오늘을 잊지 말고, 대통령이나 경찰에 쫄지 않고 할 말 할 수 있는 당당한 시민이 되라.’ 이런 메시지도 붙여줘야지요.”
6월 10일 광화문 일대에는 시민단체 추산 70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6.10 민주항쟁 21주기 일이기도 한 이날, 대한민국의 실질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서울뿐만아니라 광주, 부산, 대구, 대전, 창원 수원에서 도합 100만이 넘게 촛불을 밝혔다. 촛불 문화제가 한 달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장으로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쇠고기 사태를 지켜보며 이명박 정부의대표성과 민주성을 믿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대운하 반대, 정부 내각 쇄신, 종부세나 비정규직 보호 등 정치 전반 이슈도 검증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시청 앞 광장에서는 오후 3시부터 법질서수호, FTA 비준촉구 국민대회가 열렸다. 예비군복을 입은 70대 남성은 발언대에 올라 “촛불을 잘못 하면 나라를 불태운다.”며 목청 높여 성토했다. 보수단체들이 촛불의 모임을 지탄하고 오해하는 그 순간에도 사람들은 집회 장소 주변에 조용히 서서 플래카드와 깃발을 들고 장소를 지켰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산 생수를 무료로 나눠주던 사람들은 촛불문화제를 비난하는 할아버지들에게도 물을 나눠주었다.
거리행렬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흘러들었다. 경찰은 시민들의 거리행진을 막기 위해 세종로 한 가운데 컨테이너 박스 열개를 용접해 길을 막아 놨다. 컨테이너 박스 너머에는 의경 버스 50여대가 이중보호막을 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억지로 옮기거나 넘으려하기보다 “경☆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축”이라는 플래카트를 붙여놓고 길을 가로막는 정부를 조롱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양손에 스프레이를 든 두 남녀는 컨테이너 벽면에 촛불그림과 대통령을 희화한 쥐그림을 그렸다.
면접을 위해 새로 산 정장에 촛농이 떨어져 얼룩이 진 줄도 모르고 “광야에서”를 따라 부르던 덕상씨는 오후 10시쯤 구미에서 올라오는 친구를 만나야 한다며 광화문 지하철역으로 갔다. 광화문 거리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맥주로 마른 목을 적시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자신도 친구를 만나면 꼭 거리에 앉아 맥주를 마실거라고 했다. 광화문역으로 향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이층으로 쌓인 컨테이너 박스 위로 이순신장군 동상이 얼굴만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