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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촛불집회, 현장의 낮은 목소리를 찾아서

  • 김소영
  • 조회 : 23255
  • 등록일 : 2008-06-12
 

광장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각자 음료수를 마시거나,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른다. 단상에서 나오는 자유발언들에 진지하게 집중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문화제를 진두지휘하는 사회자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길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무리다.   


10일 서울 시청 앞에는 30만 명에서 60만 명의 인파가 모였다. 한미 쇠고기 협상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였다. 정부 협상 이후 여러 번의 문화제가 열렸지만 이날 문화제가 특별히 주목 받은 것 6월 항쟁 21주년 기념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크고 비장한 깃발, 깃발들


오후 5시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보수 단체들의 행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이나 학생운동 단체가 먼저 와 단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대부분 깃발을 앞세우고 등장했는데, 깃발은 하나같이 크고 비장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얀 바탕에 붉은 궁서체의 글씨로 ‘민족’, ‘해방’, ‘전진’ 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깃발들이 많았다. 이후에도 다양한 단체들이 등장했지만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이나 대학 학생회, 운동단체는 집회 현장의 가장 많은 ‘쪽수’를 차지하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자 깃발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어떤 깃발에는 아무런 글씨도 없이 익살스런 사람의 얼굴표정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갑자기 어디선가 노란색 깃발을 들고 노란색 천을 등에 걸친 이들이 등장한다. 자세히 보니 민주변호사회에서 나온 ‘인권침해감시단’이다. 5월 30일 민변 2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감시단은, 집회 현장에서 경찰과 충돌할 때, ‘변호사’라는 전문성을 십분 활용해 시위 참가자들이 인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돕는 것이 그들의 주요 임무다. 감시단의 일원인 변호사 이재정 씨는 “상황이 심각해지면 변호사인 우리도 무기력하게 당하고, 같이 연행될 때가 많아요. 하지만 현장에 우리가 앉아 있으면 몇몇 시민들이 고맙다고 찾아와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후원금도 보내주시고 할 때는 정말 보람 있죠” 라며 웃는다.

 

"다치시면 안됩니다"


인권침해감시단이 법으로 ‘비폭력’을 지켜낸다면, 집회 현장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대놓고 ‘비폭력’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하얀 가운을 걸친 원광대 의대생들이 스티커를 돌리며 “다치시면 안 됩니다”라고 외친다. 손바닥 크기 만한 스티커에는 ‘아름다운 촛불 문화제를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이라는 제목으로 비폭력과 질서를 강조하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밤에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핫팩을 돌리기도 했다. 3주 전부터 선배들과 집회에 참여했다는 2학년 서진웅 씨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민들의 말이 더 잘 전달되려면 폭력은 절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때 단상에서는 한 여학생과 아주머가 10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차례로 발언한다. 먼저 나온 여대생은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며 마지막에는 “우리의 분노와 힘이 들불처럼 번져나갈 수 있도록 끝까지 싸웁시다” 고 외친다. 일종의 결의에 가까운 발언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에 반해 떨리는 목소리로 등장한 아주머니는 “광화문에 이렇게 자주 나와 보기는 처음”이라며 부끄러운 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더니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에 대해 두서 없이 말하기 시작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아이나 내 가족만 중요한 게 아니라 시댁이나 친정, 내 이웃, 내 친구들 모두가 행복해야만 나도 행복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이곳에 나왔다는 아주머니는 현재 생협 회원이라고 했다.


촛불 집회 현장에는 환경단체나 생태운동 단체들도 자주 목격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생태운동 단체이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은 ‘한살림’ 역시 현장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 간식으로 먹을 참인지 고성 참다래 박스가 여기 저기서 옮겨지고 있다. 시위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채식주의를 홍보하는 단체들도 있다. 한국의 채식주의 단체들이 만든 팜플렛에는 ‘더이상 죽이지 마세요. 건강해지고 사랑을 베푸세요’ 라고 써있다. 격한 구호가 난무하는 집회 현장에서 그들의 선전물에 주목하는 이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미친소는 장애 편견을 강화합니다"


8시 35분,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퇴근을 마친 시민들이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많이 합류하면서 깃발은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다. 시민들은 자기 소속도 아닌 깃발 아래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따르는 대열 하나 없이 혼자 깃발을 들고 가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구호들이 난무한다. 각자 마련해 온 스티커 유인물도 각양각색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분노에 찬 문구들이다 ‘이명박 out’ "미친소 너나 먹어" 하는 식이다. 무리들 사이에서 한 여성이 혼자 손팻말을 들고 움직인다. 손팻말은 일반적으로 보아오던 문구들과는 낯선 것이다. “미친소는 장애 편견을 강화합니다” 그녀는 장애여성단체 ‘공감’ 소속이다. ‘정상성’의 가치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신질환을 주변화하고 배척하는 비장애인들의 시선이 불편했을 것이다.


수많은 인파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지만, 실은 하나의 목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분노하고, 노래하며, 설득할 뿐이었다. 촛불시위의 현장에는 하나의 이념으로 뭉친 운동의 ‘프로’들보다, 각자의 생활 현장에서 어쩌다 모인 ‘아마추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들은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들로 현장의 활력을 더한다. 의미 있는 산만함이다. 운동 ‘프로’들의 큰 함성에 밀려 미약하기만 한 이 ‘낮은 목소리’의 공통점은 다들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는 사실이다.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낮은 목소리들이 빚어내는 합창, 그곳에 ‘삑사리’란 없다.

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2
admin 김소영   2008-06-12 04:49:42
사실 컨셉없이 가는 바람에 삽질만 하다 왔습니다. 막상 현장에 갔다와서 한 편 쓰고 나니, 그럴듯한 야마가 넘쳐나더군요. ㅠ,.ㅠ
admin 지나가는 촛불   2008-06-12 18:07:24
"넓은 세상 볼 줄 알고, 작은 풀잎 사랑하는..." 들국화의 노래가 생각나요. 언론에서 매일 접하는 내용과는 다른 접근이 신선하네요. 도입 부분이 좀 건조하게 느껴지는 게 아쉽다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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