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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21년 후 6 ․ 10 의 모습은
- 김현주
- 조회 : 22972
- 등록일 : 2008-06-12
21년 후 6 . 10 의 모습은
김현주
미국산 쇠고기와 싸우려면
미국산 커피 마시고 싸워야 하는 시대야
퇴근 시간인 6시 10분 무렵, 서울광장의 골목길을 직장인들이 바쁘게 지나간다. 근처 패스트푸드점에는 휴대폰으로 수다를 떠는 여자와 바삐 햄버거를 먹는 남학생들 속에 하얀 셔츠의 남자 두어 명이 조용히 신문을 뒤적거린다. 여느 퇴근길 분위기다. 그런데 2차선 도로에 차가 다니지 않는다. 50여명 가량의 시위대가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완보한다. “퇴근하고 시청에서, 넥타이 부대 함께해요.” 건너편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한다. “미국산 쇠고기와 싸우려면 미국산 커피 마시고 싸워야 하는 시대야.” 모두 웃는다. 한 직장인이 씁쓸한 듯 말을 이었다. “우리 대학 다닐 때는 이런 커피는 마시면 안 되는 거였는데.” 창밖 너머로 2차선 도로에는 금속노조원 100여 명이 빨갛고 파란 티셔츠를 입고 행진한다. 현수막을 들고, 피켓을 들고, 깃발을 들고, 신이 난 듯 구호를 외친다. “이명박은 사탄이다.”
7시 무렵이 되자 수많은 시민들이 광화문 쪽으로 걷고 있었다. 12차선 도로는 사람들로 메워졌다. 차도가 인도가 되고 인도는 길가가 되었다. 길가에선 무료로 초를 나누어주는 이들과 노점상인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그냥 초가 꼽혀진 종이컵이 잔뜩 든 상자만 있기도 했다. 상자 옆에는 검은 리본과 핀도 무더기로 놓여 있었다. 지난 14일 분신을 기도해 전날 숨진 이병렬 씨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시민들은 초를 받아가고, 검은 리본을 달았다. 순식간에 동이나도 어디선가 초와 검은 리본이 길가에 나왔다.
이순신 동상 앞으로 세종로 네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항만에서나 보던 컨테이너가 2층으로 쌓여 12차선 도로를 완전히 막았다. 대신 세 갈래 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컨테이너와 100여 미터 떨어져 마주한 연단을 향해 걸었다. 연단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앞쪽에서부터 앉아주세요.” 사람들은 자리가 잡히자 곧 앉기 시작했다. 7시 반 쯤 되자 추모의식을 위해 앉았던 사람들이 조용히 일어나 묵념을 했다. 연단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양 길가에 발이 묶인 사람들도 곧 따라했다. 추모가 끝나자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시민들은 따라부르다 구호를 외쳤다. “재협상을 실시하라, 이명박을 심판하자, 국민들이 승리한다, 민주주의 수호하자.” 부모님을 따라 나온 어린이부터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 깃발 아래 모인 대학생, 퇴근길에 들른 직장인,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모였다. 연단 앞쪽 왼편에 주황색 가사를 두른 스님들이 모여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신부님들도 깃발아래 모여 있었다.
연단에서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발언이 이어질 땐 옆에 선 한 남자가 수화로 통역을 했다. 마이크 소리는 울려서 천천히 말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시민들은 소리 조절 장치를 모두 귀에 달은 듯 고요히 집중했다. 길가에는 집회 뒤쪽으로 가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전단지는 “수입 쇠고기 반대, 기름값 인상 반대”를 외치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계속 사람들에게 나누어졌다. 초를 들지 않은 시민에겐 저절로 손에 초가 건네졌다. 손에 전단지 하나, 초 하나를 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조중동 폐간’이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도 손에 손을 거쳐 사람들에게 나누어졌다.
8시가 가까워지자 사위가 어둑해졌다. 세종로 사거리의 도로 신호등은 빨간 불빛이 점멸할 뿐이고 연단 위로 빨간 애드벌룬 두개가 ‘이명박 심판’ ‘전면 재협상’ 이라는 현수막을 길게 내달았다. 시민의 손에서 촛불이 점차 빛을 발했다. 가수 안치환이 노래를 부를 때 촛불은 좌우로 움직이며 하나가 되었다. 그가 ‘유언’이라는 자작곡을 부른 뒤 ‘광야에서’를 부르자 환호와 함성과 구호가 연이어졌다. 사회자는 4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있다며 남대문까지 마이크 소리가 안 들리기 때문에 그쪽에선 자발적으로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여고생이 발언을 시작하자 주변 고등학생들이 멋쩍은 듯 웃으며 더 귀 기울였다. 좌우 길가에만 사람들의 흐름이 있었다. 일산에서 왔다는 주부의 발언이 이어졌다. 아이들 때문에 저녁 밥상 차려놓고 매번 집회에 참석했다며 엄마들이 흔들릴 때 나라가 흔들린다고 하자 함성이 이어졌다.
촛불 바람이 부는 21년 후의 거리
사회자가 이한열 열사의 영정이 도착했다고 알렸다. 연단 쪽으로 영정이 들어와 연단에 설치됐다. 영화배우 문소리의 지지발언에 이어 사회자는 다시 피켓과 초를 번갈아 올렸다 내리는 퍼포먼스를 부탁하고 구호를 외쳤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이때 포토타임을 마련한 주최 측은 연단 쪽 조명을 꺼서 사진기자들이 올라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시민들은 구호를 외치며 피켓과 초를 번갈아 올려 하나의 퍼포먼스를 만들어냈다. 다시 구호가 이어졌다. “재협상 즉각 시정하라, 이명박은 그만 물러가라, 국민이 반드시 승리한다.” 구호 뒤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씨와 박종철 아버지 박정기 씨의 발언이 이어졌다. 연단 아래쪽에 가사를 입은 스님들과 얼마간의 사람들이 앉아 있을 뿐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앉았던 사람들은 점점 일어나기 시작했다. 촛불은 점차 빼곡해져갔다. 촛불 때문에 바람이 불면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 시민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다 ⓒ 김현주
가수 양희은이 연단에 서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아침이슬’ 한 곡만 부르고 떠나자 시민들은 연신 ‘앵콜’을 외쳤다. 이병렬 씨의 조카가 유가족 대표로 연단에 섰다. 검은 상복을 입고 훌쩍거리며 원고를 읽었다. “감사합니다”로 말을 마치자 시민들은 큰 박수로 답했다. 이어 연단에 나온 유일한 정치인인 국회의원 강기갑이 나오자 “강기갑, 강기갑”을 연호했다. 그는 “대운하, 공교육, 물, 의료, 환경, 문화 모든 것을 돈놀이로 하려는 정부를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믿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라고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함성이 터져 나왔고, 중간 중간 ‘옳소!’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어 사회자가 이번시위의 주역인 여고생 촛불 소녀와 87년의 주역인 넥타이 부대 선생님이 함께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다고 소개했다.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장중한 음악이 깔리며 “재협상 안한다면 국민항쟁도 불사할 것을 선언합니다”를 외치자 시민들은 환호로 답했다. 촛불 소녀와 선생님은 “민주주의의 시대, 국민 주권의 시대로 나아갑시다”라고 함께 외쳤다. 다시 시민들과 함께하는 구호가 이어졌다. “마음을 모아서, 촛불을 모아서, 미친소, 미친 교육, 너나 먹어.”
평화 시위, 평화 행진으로
9시가 넘었다. 집회가 끝나고 행진을 시작해야 했다. 갑자기 컨테이너 속에 있던 경찰 쪽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집회로 많은 시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민들은 곧 스스로 구호를 만들었다. “닥쳐라, 닥쳐라”를 외치는 시민들의 표정에선 웃음이 비져나왔다. 사회자는 다시 한 번 포토타임을 갖게 해 기자들이 사진을 찍게 한 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광화문 쪽의 막힌 길을 제외한 세 갈래의 길로 행진이 시작되었다. 서대문 쪽으로, 보신각 쪽으로, 서울역 쪽으로 행진이 이어지며 이제 촛불은 좌우가 아닌 앞뒤로 움직였다. 사회자는 성숙한 민주시민의 역량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스피커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 국화꽃에 뒤덮인 ‘닭장차’ ⓒ 김현주
‘망아지’(39 ․ 직장인)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직장동료와 함께 왔다. 그는 자신이 69년생임을 강조하며 “예전엔 일부만 시위를 했는데 지금은 모두 다 같은 공감대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가 세 번째라는 장지영(32 ․ 직장인) 씨는 자신이 96학번이라며 처음 나오게 된 계기가 “강기갑의 단식투쟁을 보다가 나왔다”며 “오만방자한 정권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가 세 번째라는 김현경(33 ․ 자영업) 씨는 “오늘 분위기가 활동적이고 능동적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시위에 참여한 이유가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동생 박수정(20 ․ 직장인)과 함께 온 박수민(22 ․ 대학생) 씨는 친구들과 전에 한 번 왔었다며 “지금 분위기가 더 좋아요”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촛불을 들고 행진만 하는 것이 아니라 87년 6월 항쟁의 21주년 행사가 있어서인 것 같다며 “오늘은 어른들이 많이 있어서 어른들도 생각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행진 이후의 태평로에선
춤판과 시민 발언이 어우러져
행진 행렬이 지나가고 나서 태평로에 남은 사람들은 축제를 시작했다. ‘터울림’이라는 풍물패는 컨테이너 앞에서 판을 벌였다. 풍물패의 한 단원은 “이명박이 퇴진할 때까지 풍물판을 벌이겠습니다”라며 “열과 성을 다해 놀아주십시오” 라고 외쳤다. 풍물패가 원을 그리는 동안 몇몇 시민들은 가운데로 들어가서 뱅글뱅글 돌았다. 풍물패끼리는 빠른 박자에 느린 춤사위를 벌였다. 한 남자아이는 아버지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어른들이 노는 장면을 내려다 봤다. 다들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컨테이너 앞에는 ‘평화의 라인’을 예비군복을 입은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지키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컨테이너를 보며 “저거, 이명박과 이상득의 작품이야”라고 말했다. 컨테이너에 붙은 현수막엔 ‘경축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고 적혀있었다. 누구도 평화의 라인을 함부로 넘어서진 않았지만 예비군복을 입은 학생들의 허락을 받아 시민들은 컨테이너에 전단지를 붙였다. 그 옆에 있는 닭장차엔 국화꽃을 든 시민들이 몰려가 꽃을 꼽았다. 경찰의 것 모두에는 낙서를 하거나 전단지를 끼우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 당연한 듯했다. 시민들은 안쪽에 있는 전경들이 불쌍하다고 말을 걸었다. 한 시민이 “오늘은 컨테이너로 막아서 편하죠?” 라고 묻자 한 전경이 손만 내밀어 흔들기도 했다.
99학번이라고 밝힌 이효두(29 ․ 직장인) 씨는 친구들과 길가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검정색 우산을 깃대로 삼아 손잡이에 전단지를 붙였다. 우산을 왜 들고 왔냐는 질문에 “살수차가 물대포 쏘면 막으려”고 가져왔다면서 “물 같이 맞으면서 여자친구 만들려고 4일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진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자신이 의경이었다면서 살수차가 어디에서 물을 쏠지 알고 있으니 기다리는 중이라며 웃었다.
세종로 네거리에서 종각 쪽으로 난 노란 중앙선에는 촛불이 시민들의 손에 의해 놓이고 있었다. 이 초를 처음 놓기 시작한 박인기(57 ․ 자영업) 씨는 “종이컵에 담긴 초가 조그마해지면 불안해 보여서 땅에 놓아봤다”고 말했다. 그는 87년 6월 항쟁 때 청주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추억 때문에 오늘 시위에 21주년 행사가 열려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자신을 따라 초를 놓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비폭력 시위인 게 제일 좋고, 중고등학생들이 정리하는 것도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청주에서도 치열했던 지난 6월 항쟁을 기억하며 이번 시위로 정부가 충분히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재협상은 당연히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지금까지 대통령이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잘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청계천 변에는 대여섯 명 혹은 열댓명 씩 무리지어 전단지를 깔개 삼아 앉아 있었다. 그들 곁에 촛불과, 술, 컵라면은 빠지지 않았다. 시위 때문에 모였다는 것은 바닥에 뿌려져 있는 전단지 때문에 알 수 있을 뿐, 사람들은 야유회를 온 듯 했다. 소라광장 앞에는 기자단의 천막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건너편 코리아나 호텔의 조선일보사 입구 유리문엔 조중동 폐간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중년의 아저씨들은 지나가면서 “예전 같으면 유리창을 다 깨뜨렸다"며 "지금은 이렇게 스티커 붙이고 말아서 참 자상하다”고 이상해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관광지에 온 듯 그 모습을 뒤로하고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던 행렬에선 “조선일보 폐간하라”는 외침이 흘러나왔다.
프레스 센터 앞에선 어느 악단이 트럼펫과 멜로디언, 하모니카 등을 들고 민중가요를 연주하고 있었다. 100여명의 직장인들과 시민들이 그 악단을 둘러싸고 있었다. 악단의 단장이 마임을 넣어달라고 하자 직장인 남자 두 명이 나왔다. ‘바위처럼’을 연달아 연주하고 불러대도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지겨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남자만 마임을 한다고 “여자분!”을 찾기도 했다. 노래가 끝나자 한 직장인이 중앙으로 나와 “앞에 가서 싸우지 말고 내일 오후가 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게 이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무리지어 있던 사람들에서 호응이 나왔고, 다시 노래가 이어졌다. 마임을 아는 직장인들은 옛 추억에 젖은 듯 함께 율동을 넣기도 했다.
▲ 시민들과 함께 민중가요를 부르는 악단 ⓒ 김현주
남편과 함께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이향숙(41 ․ 주부)씨는 자신이 87학번이며 남편은 85학번
이라고 말했다. “지금 애들은 4박자 춤을 모르나봐요”라고 운을 떼며 아이들을 데리고 네 번째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남은 살로 보이는 아이들이 벌써 민중가요 다 외우고 구호를 따라한다고 했다. “만약 쇠고기 수입하면 한우도 안 먹고, 남편까지 도시락 싸줄 생각” 이라며 “현 정부의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고 말했다.
자정이 넘자 길 중앙에서는 전국노점상총연합에서 시위 중인 시민들에게 순두부를 돌렸다. 따듯한 순두부를 먹으며 시민들은 다시 태평로에 마련된 연단 앞에서 모여 앉았다. 사람들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행진 행렬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연단에선 시민들의 자유 발언이 이어졌다. 뒤쪽에서는 사물놀이패가 큰 판을 벌이고 있었다. 시민 발언과 춤판은 한 데 있었다. 시민들은 자유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추임새를 넣듯 “그렇지, 옳소”를 외쳤고, 사물놀이 판에 모여든 시민들은 사물의 박에 맞추어 구호를 외쳤다. “미국소를 거부한다, 명박이 물러가라, 쥐박이는 나오거라”
새벽녁이 되도록 부천에서 왔다는 고등학생들이 거리 한복판에 앉아있었다. 지난 30일과 1일에 밤을 샜다는 노중일과 황현진(고2 ․ 부천 중흥고)은 “이 시위를 통해 사회가 조금 변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시위에 참가하고, 부모님께 허락받았으니 밤새는 것 쯤은 괜찮다고 말하는 그들은 같이 온 친구들과 함께 “시위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 사물놀이패는 시민에게 사물을 쥐어줬다 ⓒ 김현주
컨테이너 박스를 넘는 상상력과 끝장 토론
컨테이너 앞에서는 스티로폼 박스 위에서 토론이 이어졌다. 스티로폼을 더 쌓을 것인가 말 것이가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중이었다. 컨테이너를 넘을 방법을 찾기 위해 인권단체 연석회의의 활동가들은 대여섯시간의 긴 토론 끝에 스티로폼을 쌓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새벽 2시경, 한 활동가는 가장 높은 스티로폼 단에 올라서서 모여든 시민들에게 외쳤다. “민주주의는 컨테이너 박스를 넘어섭니다. 우리 스스로 끊임없는 증식을 통해 민주주의 공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대신 우리가 다쳐서도, 전경이 다쳐서도 안됩니다. 그렇지만 거대한 폭력 앞에 모른체하고 물러서는 것이 비폭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수가 이어졌다. 그녀는 시민들의 평화로운 토론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우리가 안전에 대해 책임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시민들은 그렇다고 대답했고 활동가는 다시 외쳤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입니다. 스티로폼을 쌓는 것을 반대하시는 분은 나와서 발언해주십시오” 연단에서 이어지는 시민 자유발언이 컨테이너 앞에서도 이어졌다. 토론 끝에 수많은 시민들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박스를 넘는데 동의했다. 안전을 위해 서 있던 사람들은 앉았고 함께 ‘아침이슬’을 부렀다. 이 과정을 인권단체 연석회의가 주도하기는 했지만 시민들의 토론은 계속 이어졌다.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이 난동을 벌여도 시민들의 손에 의해 곧 진정됐다. ‘아침이슬’은 계속 이어졌다. 새벽녘까지 자리를 지킨 시민들은 아침 동산이 아닌 컨테이너 박스 위로 몇몇 사람들이 올라가서 깃발을 흔드는 모습을 작은 미소와 함께 지켜볼 수 있었다. (※ 이 부분은 제가 보지 못하고 다른 기사에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스티로폼 박스를 쌓고 있다 ⓒ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