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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녹색 융단

  • 이동현
  • 조회 : 21445
  • 등록일 : 2008-06-12
 

세종로 이순신 동상 앞으로 컨테이너로 2층 성벽이 쌓아졌다. 대형 태극기 2개가 걸려있다. 시민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이 생각해낸 방법이다. “동화 면세점 앞으로 오세요” 시청 앞에서 피켓을 든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광장에선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주최하는 ‘법질서 수호, FTA비준 촉구 대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신촌 연세대에선 ‘이한열 열사 추모 노재’가 준비되고 있었다. 이들은 21년 전과 같이 신촌을 출발해 시청 광장으로 행진할 계획이다.


10일 오후 서울은 촛불시위를 위해 모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숭례문 앞길까지 차량통제 범위가 확장되고 있었고, 그 도로를 사람들이 채웠다. 아이들 손을 잡고 있는 남성.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여성. 교복을 입은 10대. 양복을 입은 40대. 작업복을 입은 30대. 모자를 눌러쓴 어르신.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어는 없어보였다. “먹을거리 문제에 좌우가 없다” 최병기(60, 강북구 번동)씨는 “모든 것을 시장원리로 푸는 것은 잘못”이라며 “그렇다면 군대는 왜 필요한가? 전쟁나면 알아서 도망가라고 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수입업자가 해야 할 얘기를 정부가 하고 있다”며 소리를 높였다. 그는 원래 쇠고기 수입에 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다. “좋은 것 들여와 싸게 먹으면 좋지만, 지금 들어올 건 쓰레기 아니냐”며 “지금은 6, 70년대 우선 배고프니까 먹고 보자는 시대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쇠고기 문제 뿐 아니라 대운하, 건강보험도 문제라고 했다. “6, 70년대 보험이 없을 때, 돈 없는 사람은 주사 한 대 못 맞아 병원 앞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의료보험은 63년 의료보호법 제정, 77년 의료보호사업 실시 이후 12년이 지난 89년 지금과 같은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됐다. 촛불시위가 언제까지 계속 될 것 갔냐는 질문에 그는 “잘못한 걸 고쳐야 용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청계광장 주변에는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한 시국토론이 열렸다. 언론사에서 설치한 임시 중계석도 눈에 띄었다. 일반인이 참가하는 시민 발언대도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 되고 있다. “현재 사태는 정치인도 지식인도 해결할 수 없다” 정태인(성공회대 겸임교수)씨는 지금 정치권엔 “장면, 김영삼, 김대중과 같은 사람이 없다”며 “지식인들도 이곳에 나오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결국 시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태는 10년 이상 지속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라며 “단순히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대운하, 교육, 건강보험 등 다른 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의 요구를 수렴하지 못하는 집단은 존재할 수 없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광장에선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주최하는 ‘법질서 수호, FTA비준 촉구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 주변엔 시민사회단체, 언론, 정당이 설치한 천막들이 원을 그리며 설치돼 있었다. 태극기를 든 사람과 ‘이명박 OUT"이 적인 종이를 든 사람들 사이에 신경전은 계속됐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전국에서 차출돼 관광버스를 타고 온 경찰이 그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한쪽에선 집회 참석자들이 MBC 기자를 둘러싸고, MBC의 보도가 “편파적이고, 무책임하다”며 기자에게 따졌다. 기자는 아무 말 없이 서 있다 잠시 후 그곳을 빠져나갔다. 뉴라이트 집회에서 만난 20대는 “우린 자원봉사자다, 저보다 높은 분이 계시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8살 아들과 함께 한 여성은 “촛불시위엔 찬성하지만, 그 나머지 모든 것에 대해선 반대 한다”고 했다. 나머지 모든 게 무엇을 말하느냐는 질문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컨테이너 장벽을 사이에 두고 시민들이 모이는 곳 너머엔 경찰 버스가 가득했다. 세종로, 효자동 길, 삼청동 길. 청와대로 향하는 길은 모조리 전경버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차량의 엔진 소리를 빼곤 적막감이 감돌았다. 간간히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 몇몇 보일 뿐이다. 세종문화회관 옆에선 전경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서로 몸을 포개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 연좌시위를 벌이다 잠든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적선동 사거리에도 컨테이너 장벽이 세워졌다. 맞은편 정부종합청사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김 모 씨는 “야근을 위해 저녁 먹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상관을 모시고 효자동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길을 막은 경찰이 비켜줬다. 삼청동 길엔 여기저기 돗자리가 펴져 있었다. 전경들이 그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한 전경은 ‘증권투자상담사’ 책을 보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그에게 다가가자 어디선가 무전기를 든 사람이 나타났다. 그를 인터뷰 할 수는 없었다.


저녁 7시, 일본 대사관 앞에선 전경들이 버스와 버스를 밧줄과 철선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밧줄로 차량을 끌어내지 못하게 하는 작업이다. 세종로까지 세워진 전경버스가 모두 연결돼 있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안국동 로터리에선 컨테이너 장벽을 설치하는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틈새를 막는 용접작업이 계속됐다. 그 앞을 지나가던 한 직장인은 “야 이게 정부가 하는 짓이야”라며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안국동 쪽에서 오던 외국인들도 사진기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안국동에서 작은 가계를 운영하는 박 모(66)씨는 시끄러워서 며칠째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의 책임을 물었다. “정치인들이 자기 욕심만 부리고 있다니까, 민생은 외면하고…….” 야당 정치인이 촛불시위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잘못된 결정이라 말했다. 10대들의 촛불시위에 대해서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10들이 건설적이다. 평화적으로 하니까 유모차를 몰고 나오고, 가족이 함께 올 수 있다”고 평화시위를 강조했다. 그는 “장관이 사표내고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 생업이 되게 해 줘야지”라며 “정치권이 국민을 불안하지 않게, 국민이 서로 도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촛불문화제가 끝나자 시위 참가자들은 거리행진에 나섰다. 서대문, 종로, 숭례문 쪽으로 나눠 행진했다. 행진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청계광장과 신문로에선 벌어진 거리 공연에 참여했다. 홀로 대금으로 애국가를 연주하는 아저씨도 보였다. 노래 공연, 국악 공연도 진행됐다. “문들아 머릴 들어라”, 시청광장에선 찬송가 소리도 들렸다. 뉴라이트 집회가 끝나고 ‘구국 기도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옆 잔디 광장에 자릴 잡은 우상경(45) 씨는 가족과 함께 남양주 마석에서 왔다고 했다. 그의 아내 양인선(41) 씨는 지금까지 촛불시위에 8번 참석했다고 한다. 가족이 함께 온 건 4번째라고 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해본 느낌을 묻는 질문에 건희(초5)는 “졸려요”라고 말했다. 새벽1시까지 있다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남양주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쇠고기를 자주 먹느냐는 질문에 창희(초6)는 “아니요”라고 말한다. 상경 씨가 고개를 숙인다. 창희는 “요즘은 급식으로 나오는 쇠고기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용희(중2)는 “군대 가기가 무섭다”고 했다. “쇠고기가 음식쓰레기가 될 텐데, 나도 5년 후면 군대 가야하잖아요” 창희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라며 “씁쓸하다”고 말했다.


밤늦게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세종로 컨테이너 앞에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컨테이너를 넘어야 할지에 대해 토론이 벌어졌다. 시청 앞 광장에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정부는 흔들리겠지만, 결국은 서민들만 죽어나가는 거 아니겠느냐” 박 모 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잔을 내려놓은 자리에 잔디밭이 보였다. 광장의 잔디가 녹색 융단처럼 보였다. 지난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을 잔디는 이미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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