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사업 속도 최우선’ 탈법·갈등확산 뒷전
이명박 정부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활성화시키겠다며 각종 규제 완화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재개발 사업은 낙후된 주거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당초 취지는 사라지고 원주민 대신 투기꾼에게만 혜택을 주고 있다. 건설사는 수익에만 몰두하고 주민간 갈등과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또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지자체와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는 이러한 문제점을 더욱 키울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부의 맹목적인 도심 내 주택공급 활성화가 잉태할 문제점을 미리 점검해보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을 위한 시리즈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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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에서 대지 85.8㎡(26평)의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던 신모씨(42·여)는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강제로 쫓겨나 지금은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신씨는 2004년 조합 창립총회 당시 이곳이 중소형 아파트 위주로 재개발된다는 얘기에 큰 부담없이 새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 얘기와는 달리 조합원이 주택분양을 신청할 때는 중대형(151.8~270.6㎡·46~82평형)밖에 없었다. 부담금도 자신이 생각한 금액보다 4억원이 넘게 늘었다. 그는 당초 설계개요와 달리 사업계획이 변경됐는데 조합원의 동의도 받지 않은 것은 무효라며 시공사와 조합에 항의했다. 그러자 조합은 3억원을 법원에 공탁하고 현금청산을 했다. 신씨의 집을 강제로 수용해버린 것이다. 신씨의 집은 땅값만도 시세로 하면 받은 돈의 두 배가 넘었지만 수용할 때 재개발 조합이 가격을 정하도록 해놓은 법 때문에 수억원을 손해볼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를 완화키로 함에 따라 신씨 같은 피해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사업자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법이 주민들에게 더욱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방안도 결국은 사업 추진의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국토해양부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하면서 기본계획의 변경, 정비예정구역의 분할·합병, 최고 높이·층수의 변경, 관리처분의 변경에 따른 사업계획 변경 등을 ‘경미한 변경사항’에 포함시켰다. 경미한 사항에 포함되면 토지소유자의 동의나 위원회 심의 등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결국 신씨의 경우처럼 당초 계획이 변경되고 사업비 부담이 늘어나도 사업추진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집주인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사업추진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자체 등의 관리감독 기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 서울 성북구의 한 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는 2006년 1월 토지소유자 329명 중 182명(55.3%)에게 동의를 받았다며 설립 승인을 얻어 재개발을 추진해왔지만 이 중 128명(70.3%)의 동의서는 인감도장 날인이 없거나 다른 사람의 도장이 찍힌 것이었다. 그런데도 승인 기관은 ‘동의서가 조작됐다’는 주민들의 민원을 묵살했다. 주민들의 이익보다는 사업 추진이 빨라지는 것에만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는 이처럼 요식적이던 공공기관의 역할마저 줄일 가능성이 높다.
경실련도시개혁센터 남은경 부장은 “이명박 정부의 도심공급 활성화 방안은 지금도 편법과 갈등으로 얼룩진 재개발·재건축 현장을 무법천지로 만들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사업의 신속성보다는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부터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사업 성공 가능성이 낮아진다”면서 “주민의 참여를 막는 규제 완화보다는 반대로 참여를 높일 수 있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서민 울리는 재개발·재건축 정책]中. 시공사 돈벌이로 전락 |
| 입력: 2008년 09월 04일 18:2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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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업 독점… 공사비 부풀려 폭리 분양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건축경기가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재개발·재건축 등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 늘리기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개발·재건축이 건설경기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이면에는 이익 극대화를 위한 건설사들의 편법과 이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가 도사리고 있다.
4일 경실련 도시개혁센터가 2006~2007년 조합과 시공사 간 도급계약이 체결된 서울 8개 재개발 사업을 분석한 결과, 관리처분계획 시 확정된 공사비는 3.3㎡당 378만원으로 사업초기 시공사가 제시한 가격 260만원보다 46%(118만원)나 늘어났다. 총공사비로 따지면 1개 사업지당 평균 821억원이 상승한 것이다. 경실련은 건설사들이 이 가운데 210억원 정도는 과다계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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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사들이 이처럼 공사비를 제멋대로 높일 수 있는 것은 시공사 선정이 사업초기에 사실상 이뤄지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시공사 선정은 조합설립 이후 공개경쟁으로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조합원들에게는 사업을 추진할 전문성과 비용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공사는 조합에 인허가 컨설팅뿐 아니라 운영비, 설계비 등 초기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담보로 사업권을 따내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편법으로 사업을 따낸 시공사들은 초기 비용을 회수하고, 이익을 남기기 위해 건설비용을 높이게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기사업 비용 조달을 위한 공공의 지원과 시공사 선정 시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법무법인 해냄 유주상 변호사는 “추진위 설립 단계부터 시공사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이 재개발·재건축 비리의 출발점”이라며 “국가나 지자체가 재정지원으로 초기자금을 충당하게 하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방안은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시공사의 역할을 확대해 자신들의 이익만 늘리도록 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8·21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통해 재건축도 시공사 선정시기를 ‘사업승인 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 인가 이후’로 앞당겼다.
이에 따라 시공사가 사업을 독점할 수 있는 시점도 앞당겨져 시공사가 조합원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기 쉬워졌다.
정부는 또 중복심의를 줄여 사업기간을 단축한다는 명목으로 시공사 선정 전에 이뤄지던 건축계획을 시공사 선정 이후로 늦췄다. 사업초기에 구체적인 사업비를 산정하는 일이 아예 불가능해 진 것이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자기가 내야 할 돈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사업추진을 결정하고 시공사를 선정하게 되는 셈이어서 시공사의 입맛대로 사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조합과 시공사 간 이뤄지는 계약관행도 시공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지만 당국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앞에서 언급한 8개 사업지역의 도급계약서에는 ‘공사비 산출 내역서’ 없이 공사계약조건과 마감내역만 있을 뿐이었다.
경실련도시개혁센터 남은경 부장은 “결국 시공사가 정한 높은 건축비 부담을 덜기 위해 조합은 일반 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를 높이고, 이는 다시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러한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제도개선은커녕 ‘시공사의, 시공사에 의한, 시공사를 위한’ 사업으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 [서민 울리는 재개발·재건축 정책](下)빨리빨리보다 제대로 |
| 입력: 2008년 09월 05일 17:5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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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업진행 정보 공개, 투명성 확보부터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정부가 이를 주거복지보다는 경기부양의 차원에서 다루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으로 이런 기조를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이 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위해 건설회사들이 더 쉽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계속 완화하고 있다.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허용,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및 시공사 조기 선정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관할 관청의 감독 범위도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은 핵심 규제라고 할 수 있는 재건축 용적률 제한이나 임대주택 의무 비율 등의 규제도 조만간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심 주택 공급 확대’라는 대선 공약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이런 규제들이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조급증’이 재개발·재건축 사업 추진을 더욱 더디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방적인 사업추진은 주민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면서 건설경기도 부양하는 효과를 얻으려면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업진행에 대한 정보가 조합원들에게 상세히 공개되고, 관할 관청이 관리·감독만 제대로 하면 사업현장의 불신과 갈등이 거의 해소될 것이란 얘기다. 서울 성동구의 한 재개발조합은 조합과 주민 사이의 갈등으로 소송에 휘말려 있다. 조합은 지난 4월 관리처분총회를 열어 1000여 명의 조합원 중 서면동의서가 500여 장 있다며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에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서면결의서와 동의 내용을 보여주지도 않고 처분계획을 통과시킨 것은 무효라며 관리처분승인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주민들은 이 과정에서 구청에 총회를 참관해 일방적인 사업추진을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구청은 이를 외면했다.
이곳 주민인 이영광 동서울대 교수는 “구청 측은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조합이 낸 사업시행계획을 승인해줬다가 이에 반대하는 주민에게 1심 재판에서 일부 패소했다”면서 “구청은 사업을 빨리 진행하는 데만 관심이 있어 현장에서 터져나오는 문제를 덮기에 급급해한다”고 말했다.
또 단일 규모로는 최대 재건축 단지인 가락 시영아파트는 조합이 주요 사항을 결정하면서 조합원의 의견을 제대로 묻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업무집행정지 가처분’ 조치를 받는 바람에 지난 7월로 예정됐던 재건축 공사 착공을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규제완화 일변도의 정책추진보다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실련 남은경 부장은 “조합 운영의 비민주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사업비 구성과 집행, 주민 동의 절차 등이 철저하게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보공개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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