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작
단비뉴스 편집실
짧은 연휴·가벼워진 지갑…추석이 없네요
- 윤순혁
- 조회 : 17159
- 등록일 : 2008-09-16
| 짧은 연휴·가벼워진 지갑…추석이 없네요 | |
![]() |
|
#재래시장 상인 한숨만…경품행사에도 손님없어
“여기 고사리 싱싱해. 명절 때 잡숴봐!”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 영천시장에서 만난 채소가게 주인 이아무개(65)씨는 맞은편 가게로 향하는 손님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자 너도나도 가게 앞까지 나와 ‘호객’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시장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윤성관(46)씨는 “손님이 지난해 추석의 절반 정도”라며 “경기가 아무리 어렵다지만 그래도 대목인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일부 재래시장에서는 경품을 주고 노래자랑 등의 행사를 벌이며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다. 서울 수유시장에서 인삼을 파는 이호재(64)씨는 “상인회 차원에서 돈을 추렴해 대규모 경품 행사까지 벌였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며 “기대를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도 손님이 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추석과는 아예 비교를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송편을 사러 나왔다는 주부 김아무개(40)씨는 “올 추석은 기간도 짧고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아 그냥 최소한으로 쇠려 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도서관으로…공채 앞두고 합숙스터디
도심 직장인과 학생들 중에는 아예 고향길을 포기하고 ‘나홀로 추석’을 보내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12일 오전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은 거의 빈 좌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올 하반기 대기업 공채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장현진(26)씨는 “지금 한창 모집 공고가 뜨는 등 입사 전형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고향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 때문에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는데, 지방에 사는 다른 친구들도 고향에 가는 사람은 없다”며 “연휴 때 1박2일로 합숙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취업 스트레스도 수험생들의 발목을 잡았다. 2년째 대기업 입사를 준비 중인 박희태(29)씨는 “요즘 불경기 때문에 취업 환경이 더 어려워졌는데, 추석 때 친척들을 만나면 수도 없이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잿빛으로 변해버리는 것 같아 비참하다”며 “이번 추석에는 혼자서 조용히 마음을 추스르고 싶다”고 말했다.
#갈수록 업무가중 직장인 “고향 안가고 쉬고 싶다”
짧은 연휴 탓에 귀성을 포기한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임아무개(27)씨는 “갈수록 업무량이 많아져 주말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어 이번 추석에는 집에 가지 않고 쉬려고 한다”며 “부모님들은 ‘연휴도 짧은데 왔다 갔다 고생하느니 그렇게 하라’고 하시지만 쉬어도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구직 경쟁은 훨씬 더 치열해졌다. 인력회사를 운영하는 황아무개씨는 “100명 정도를 모집했는데 금새 모집 인원이 다 찼다”며 “공무원 시험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20대 청년, 취직을 못 하고 있는 20대 후반 여성뿐만 아니라 주부들까지도 ‘추석도 짧은데 안 쇠고 한 푼이라도 벌어보겠다’며 연락해 왔다”고 말했다.
#단식·농성중 비정규직 수년째 길에서 한가위
기륭전자와 고속철도(KTX) 등 장기 투쟁 중인 비정규 노동자들은 올해도 농성장에서 명절을 맞게 됐다. “한가위에는 단식을 끝내고 복식을 하며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했던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단식 94일째인 이날 오전 또다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김 분회장은 지난달 병원에 실려갔다가 엿새 만에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기륭전자 앞 농성장으로 돌아와 링거를 맞으면서 단식을 계속해 왔다. 유흥희 조합원은 “김 분회장이 심장 압박을 느끼고 몸이 굳는 등 상태가 매우 안 좋아 조합원들이 억지로 병원에 보냈다”고 말했다. 회사 쪽과는 이달 초 교섭이 결렬됐다. 고속철도(KTX) 여승무원들이 길 위에서 보내는 한가위는 벌써 5년째다. 오미선 지부장 등 5명은 서울역 근처 40m 조명 철탑에서 “철도공사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17일째 고공농성 중이다. 나머지 승무원 20여명은 11일부터 서울역 케이티엑스 승강장 어귀에서 서로의 몸에 쇠사슬을 감은 채 침묵 농성을 시작했다. 철도노조 간부 10여명도 한가위 연휴 기간 농성에 결합할 예정이다. 파업 450여일째를 맞는 이랜드 일반노동조합도 연휴 내내 홈에버 상암동 월드컵몰 앞 천막 농성장을 간부들이 돌아가며 지키기로 했다.
#태안주민 관광수입 ‘뚝’…생계비 지급 가처분신청
지난해 12월 기름유출 사고를 겪은 충남 태안 주민들의 추석도 예전만 못하다. 겉보기에는 기름유출 피해가 대부분 회복된 듯하지만, 올여름 휴가철 관광객이 지난해 대비 80% 이상 줄어 어민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힘든 추석을 맞고 있다. 태안군 신두리에서 숙박업을 하는 전광호(55)씨는 12일 “연수입의 60~90%가 여름휴가철에 집중되는데 피서객이 3분의 1 수준에 그쳐 은행 대출이자와 유지비를 감당할 길이 막막하다”며 “이웃 주민들 사정도 대부분 비슷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추석을 지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씨 등 기름유출 피해를 입은 태안 주민 6800여명은 이날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매달 20만원씩 15개월 동안의 생계비 등 200억여원을 지급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들은 신청서에서 “손해배상 소송이 종결될 때까지 손해액의 일부라도 지급받지 못하면 주민들이 생계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며 “올해 여름 관광객이 찾아와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년의 14%에 불과해 살길이 막막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5월 삼성중공업과 현대오일뱅크, 정부를 상대로 “손해사정 실사 결과가 나오면 정확한 손해액을 특정하겠다”며 우선 1인당 20만원씩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송경화 황예랑 박현철 황춘화 기자 freehwa@hani.co.k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