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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이동현]시화호 포도마을 할매의 울분
- 이동현
- 조회 : 16394
- 등록일 : 2008-10-07
| 시화호 포도마을 할매의 울분 | |
| 송산그린시티 토취장 강제수용 위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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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경 기자 |
시설비도 못뽑고 땅마저 뺏길판 죽인땅 살린다며 다른 땅 죽이는 정책 팔순에 머리띠 매고 나선 심정 아는가?
김규숙(78) 할머니는 팔십 평생을 경기 화성시 송산면에서 살았다. 1980년대 중반 시화호 조성으로 “자식 넷을 먹여 살리던” 바다를 잃고 난 뒤 20년 넘게 포도밭을 일궜다. 지난여름, 정부는 시화호 간석지에 대규모 레저단지를 짓는다며, 송산면 일대 산지를 수용해 매립용 흙을 퍼나르겠다고 고시했다. 그가 평생 가꿔 온 논밭은 물론 7년 전 먼저 숨진 남편이 잠든 선산까지 수용지에 포함됐다. 시화호 때문에 삶의 반쪽을 잃고 또다시 나머지 반쪽을 잃게 된 그는 생전 처음 붉은 머리띠를 동여맸다. 지난 4일 기자와 만난 할머니는 굴곡진 자신의 삶을 하소연하듯 털어놨다. 시화호란 게 생기기 전 마을이 어땠는지 아는가? 6·25 때 피난민들이 들어와 땅 없이도 먹고 살았을 만큼 풍요로운 마을이었어. 굴, 바지락, 소라, 낙지, 별게 다 잡히니, 요 아래 ‘마산포’라고 소래 포구만큼 큰 어장이 섰지. 그땐 고무장갑이나 장화가 있을 게 뭐야, 손발이 다 얼어터졌지만 아침나절 일하면 나무통 하나 가득 굴이며 바지락을 채웠지. 스물에 윗마을로 시집와서 농사는 농사대로 짓고, 농한기엔 굴 따며 시집살이를 했지. 그래서 처음엔 바닷물 막는다고 할 때 ‘솜바지 두 겹도 뚫는 새벽바람 물일도 끝이다’ 싶어 철없이 좋기도 했어. 네 남매랑 뭘로 먹고사나 막막하다가도,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니 좋은 일이겠거니 따랐지. 그런데 갯벌을 막고 마산포 바다는 죽었어. 거기에 의지해 살던 이들도 하나 둘 떠나 지금은 바다도 육지도 아닌 황폐한 땅만 남았네.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이 농사 저 농사 지어 보다가, 동네에서 하나 둘씩 포도나무를 심었어. 10년 만에 이 근방은 포도마을이 다 됐지. 물일 못 하게 된 사람들이 산자락이며 둔덕이며 나무 심을 수 있는 곳엔 다 포도나무를 심었거든. 외지 나갔다 들어오면 포도 향기에 취할 정도였으니 …. 방조제 때문에 소금 먼지가 바람 타고 이파리에 들러붙어 노랗게 말라가는 걸 일일이 닦아가며 키웠지.
그런데 얼마 전 느닷없는 소리가 들리더구만. 시화호를 메워서 그린시틴가 뭔가라는 레저단지를 만드는데, 우리 동네가 토취장이 됐다는 거야. 나라에서 공시지가로 보상해 주겠다는데, 세상에 농사짓던 땅 보상받아 잘된 사람 봤는가? 새벽이슬이 마르기 전부터 보듬던 포도나무를 버리고, 조상 대대로 물려온 집터를 버리고, 평생 이웃들을 버리고 대체 어디에 가서 뭘 해 먹고 살란 말인지 …. 농촌에서 집 한 채 짓고 논밭 꾸려 살려면 융자 하나 없는 집이 없네. 우리 마을 70여 가구 중에도 산기슭을 개간해 아직 시설비도 못 뽑은 사람들이 있어. 빚 안고 어디 가서 또 새 빚을 지라고 ….
이젠 포도 농사도 힘에 부쳐서 조금만 지어다 추석 때 애들한테 한 박스씩 안겨 보내는 게 전부야. 올 추석 때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고 애들 차에 실어 주고, 텅 빈 가지를 보니까 눈물이 다 나더라고. 일곱 해 전 가신 영감이랑 같이 심었던 포도나무인데 …. 어디 포도뿐인가, 시집올 때부터 뒤뜰에 있던 감나무, 젊었을 때 영감이 심은 은행나무 …. 평생 살아온 이 땅을 어떻게 떠나? 텔레비전에서 데모하거나 촛불 켜는 거 보면 ‘저 사람들은 참말로 한가한가 보다’고 생각했지. 먹고살기 바쁘면 그런 일을 할까 했지. 그런데 막상 내가 이 나이에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화성시청 앞에서 데모를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데모도 지난달에 두 번이나 했는데, 아직 시장님 얼굴도 못 봤네. 이럴 줄 알았으면 시화호도 못 막게 할걸, 후회해. 바다 메우고 유람선 떠다니게 한다더니, 십수 년을 소금 먼지다, 공해다, 고생시키더니 지금 뭐가 됐나? 레저단지 만드는 데 또 십 년쯤 걸린다는데, 이 근교 포도 농사는 다 한 거나 다름없지. 땅 죽이고, 죽인 땅 도로 살리겠다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또 땅을 죽이려는 걸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몇 푼 보상금에 우리 먹여 살려 준 땅의 은혜를 또 배신할 수는 없지. 오죽하면 팔십에 머리띠 두르고 거리에 나섰겠는가? 화성/글·사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생태관광도시 개발 흙 채취 명분
‘죽음의 바다’에서 가까스로 회생 중인 시화호가 이번엔 ‘개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 3월 시화호 남쪽 간석지 54.69㎢에 이른바 생태·레저 복합도시 ‘송산그린시티’를 짓겠다는 계획을 고시했다. 그러나 공사가 지난 8월 화성시 송산면 산지 30만여㎡를 간석지 매립용 흙을 채취할 토취장으로 지정하면서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시작됐다. 토취장 수용 대상지인 고포리, 천등리, 지화리 일대는 지역 특산품인 ‘송산 포도’의 주산지다. 1980년대 중반 시화호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지면서 어업권을 잃은 송산면의 600여 가구는 지난 20여년 동안 포도 농사로 생계를 이어왔다. ‘송산그린시티 토취장 반대 송산면 주민대책위원회’ 이상배 사무국장(41)은 “산지가 토취장으로 지정되면 제2의 환경 파괴는 물론 수자원 고갈, 흙먼지 등으로 사실상 포도 농사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관광생태도시를 만들기 전에 지역 생태계와 농업 기반이 먼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지난달 19일 수자원공사가 주최한 보상설명회가 열린 화성시청 강당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수자원공사 쪽은 “주민들의 반발은 이해하지만 지난 8월에 2주 동안 토지수용 공람공고를 마친 만큼 토취장 변경은 어렵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보상에 응하지 않으면,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공익 타당성 등을 판단해 강제수용할 수 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 ||||||||||||||||||||

